과학 초보자를 위한 2007 노벨 화학상.
최근 들어 '노벨 화학상'으로 검색해 이 블로그를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은데, 솔직히 요 글은 좀 어려운 데다가 본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이번 순서는 과학 초보자를 위한 2007 노벨 화학상! 짜잔- (틀린 내용이 있으면 고수님들께서 지적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

--

이번 2007년 노벨 화학상은 게르하르트 에르틀(Gerhard Ertl)이라는 독일 교수님께 돌아갔습니다. 이 교수님이 도대체 무슨 업적을 남겼길래 무려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
19세기까지 '식량 문제'는 인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심지어 18세기의 경제학자 맬서스는 자신의 저서 <인구론>에서 식량 증가가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인류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죠. 식량이 지금처럼 증가하면 결국 인류는 멸망한다- 그렇다면 이제 식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죠.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식물의 생장은 식물이 섭취하는 영양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양소는 자연에서 얻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데, 몇 가지 영양소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는 조금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들을 공급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비료'를 만들어서 뿌려주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19세기까지 식물에게 가장 많이 부족했던 영양소는 '질소'였습니다. 질소는 쉽게 얻을 수가 없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공기의 80%를 차지하는 것이 질소 분자(N2)입니다. 그런데 왜 질소를 쉽게 얻을 수 없을까요? 식물이 질소를 이용하려면 질소 원자 하나하나를 써먹어야 하는데, 질소 원자 두 개가 붙어서 만들어진 질소 분자는 웬만해서 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식물이 질소 분자를 쪼갤 수 없기 때문에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 분자라도 이용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식물이 질소를 얻는 공급원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번개가 칠 때 우연히 질소 분자가 번개가 지나가는 길에 있다가 얻어 맞을 수도 있는데 그런 과정에서 쪼개진 질소 원자를 이용한다든지, 아니면 질소 분자를 쪼갤 수 있는 '매우 특이한'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는다든지, 뭐 이런 어려운 방법들을 통해야 질소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20세기 초에 살았던 화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 씨는 바로 이 질소를 생산해내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한 사람입니다. 하버 씨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질소 분자(N2) 하나와 수소 분자(H2) 세 개를 갖다 놓고 철판을 하나 깝니다. 그리고 높은 온도, 높은 압력을 가해주면- 짜잔! 질소 분자와 수소 분자가 쪼개지고 다시 합쳐져서 암모니아(NH3)가 만들어집니다. 요걸 화학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N2 + 3 H2 → 2 NH3 (Fe 존재 하에서, 고온, 고압)

이 방법은 금새 공업화되어서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이라 불리는 폭발적인 식량 증대를 낳게 됩니다.

자, 만약 식량 생산에만 관심이 있다면 여기까지만 알아도 충분해요. 그런데 화학자들은 저런 반응이 일어나는 과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죠. 생각을 해봅시다. 지금 반응식을 보면 질소 분자 하나랑 수소 분자 세 개가 결합을 했다가 두 개의 암모니아 분자를 낳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분자 네 개(질소 하나, 수소 셋)가 동시에 쾅 충돌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거의 0이죠. 게다가 희한하게도 철판을 깔아주지 않으면 반응이 진행되지도 않더란 말이죠. 뭔가 반응의 내부 과정이 복잡하게 존재할 것 같지 않나요?

문제는 철판이 깔려있고 그 위에서 기체 분자들이 왔다갔다 하는 반응은 쉽게 연구하기 힘든 반응이라는 겁니다. 이를 전문용어-_-로 '불균일 촉매 반응(heterogenous catalytic reaction)'이라 하는데, 촉매로 작용하는 철판은 고체, 반응을 일으키는 분자들은 기체로, 서로 다른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촉매와 반응물이 전부 같은 상태(균일 촉매 반응)라면 화학적으로 다루기가 비교적 쉬워요. 그냥 잘 섞여 있고 서로 상호작용을 일정하게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불균일 촉매 반응은 다루기가 어려운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두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안 섞인다'는 거죠. 철판은 딱딱하게 바닥에 깔려 있고 기체 분자들은 위에서 돌아다니잖아요. 서로 주고받는 영향도 당연히 달라질테고... 으아 복잡해져요!

자, 두 물질이 안 섞이면 경계면이 생기겠죠? 이를 계면, 혹은 표면(surface)이라 합니다. 요걸 다루는 화학을 계면화학, 혹은 표면화학(surface chemistry)이라 하는 거고요. (이 표면은 내부와는 또다른 성질을 갖게 되는데, 이게 또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죠. 뭐-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 나중에 글을 쓰게 되면 링크를 하도록 할게요 -ㅅ-;) 자, 여기서 에르틀 교수님의 업적으로 돌아가봅시다. 에르틀 교수님은 이렇게 연구하기 어려운 주제에 도전하셨어요. 어떻게 연구해야 할 지도 전혀 모르겠고,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에르틀 교수님은 '하나씩' 각개격파하는 작전을 택하셨답니다. 그리고 각 전투에 필요한 전략을 다양하게 가져가기로 하셨어요. 무슨 이야기냐- 앞에서 불균일 촉매 반응을 연구하는 게 어렵다고 했잖아요. 이는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되기 때문에 그런 건데요, 이걸 통으로 보지 않고 하나씩 떼어내서 연구하기 시작하신 거죠. 그 결과 에르틀 교수님의 실험에는 초고진공 기술, 분광학, 전자현미경, 전자산란, 결정학 등 엄청나게 다양한 실험기법들이 도입되었죠. 그리고- 이런 고생 끝에 교수님이 내린 결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에르틀 교수님이 밝힌 암모니아 생성 과정은 이렇습니다. 먼저 수소 분자가 철판 위에서 까불락거리다가 철판의 화학적 인력 때문에 철판에 가서 철컥 붙습니다. 붙으면서 수소 분자는 수소 원자 두 개로 쪼개지죠. (이를 가리켜 화학적 흡착 chemical adsorption 이라 합니다.) 다음으로 질소 분자도 철판 위에서 까불락거리다가 철판에 가서 붙는데요,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질소 분자는 철컥 쪼개지지 않고 통째로 살짝 붙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일단 질소 분자를 구성하는 질소 원자-원자 사이의 힘이 너무 세기 때문이죠. (요건 물리적 흡착 physical adsorption 입니다.) 그런데 막상 철판에 붙자 철판은 배신을 때립니다. 둘러싸고 마구 간지럽혀서 둘을 쪼개놓는 거죠. 비유하자면, 어느 커플이 있는데 둘 사이의 사랑 파워가 너무 세다고 합시다. 이 커플이 깨지길 바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일단 얘들을 사람들 많은 곳으로 끌고 가죠. (물리적 흡착) 그리고 주위에 미소년/미소녀를 마구 갖다붙여서 -ㅅ- 잡아당기는 겁니다. (분해) 그럼 깨질 수도 있겠죠? 좀 비유가 허접하긴 한데 -_-;; 하여간 수소의 흡착 과정과 질소의 흡착 과정이 다르다는 겁니다.

자, 그럼 철 표면 위에 수소 원자들이 데굴데굴, 질소 원자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모습이 되겠죠? 여기서 질소 원자가 수소 원자 한 마리를 만나면 감격의 포옹을 합니다. 그래서 NH라는 원자단(원자 덩어리)을 형성하고요, 또 한 마리를 만나서 NH2를, 그리고 하나 더 만나서 NH3를 형성합니다. 이 NH3가 형성되는 순간 이 아이는 철판에서 떨어져 나와 뾰로롱~ 떠나버리는 거죠. 이 과정을 화학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 안에 있는 흡착이라는 말은 철판에 붙어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무 말도 안 써있는 놈은 기체로 둥둥 떠다니는 놈이고요.)

H2 → 2 H(흡착)
N2 → N2(흡착) → 2 N(흡착)
N(흡착) + H(흡착) → NH(흡착)
NH(흡착) + H(흡착) → NH2(흡착)
NH2(흡착) + H(흡착) → NH3(흡착)
NH3(흡착) → NH3

요렇게 설명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실험 결과와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답니다. 네 개의 분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알 수 있고, 철판떼기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도 알 수 있죠? ^^ (화학을 좀 공부한 분들을 위해 약간 덧붙이자면 질소 분자가 쪼개지는 과정이 속도 결정 단계 rds 이기 때문에 그 단계를 조절하면 전체 반응의 속도까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밝혀내신 것도 하나의 업적이지만, 에르틀 교수님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보다는 표면화학을 연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르틀 교수님은 비단 암모니아 생성 과정 뿐 아니라 질소 흡착 과정, 일산화탄소의 산화 과정 등에도 업적을 남기셨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실험 기법을 총동원하여 결과를 얻어내셨죠. 아무도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묵묵히 자신의 생각대로 다양한 방법을 조합해서 하나의 결론을 얻기까지 노력을 기울인 에르틀 교수님. 이 분 덕분에 80년대 이후 표면화학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겁니다 ^^ 지금까지, 로보스였습니다 :D
by 로보스 | 2007/10/22 09:51 | |과학| | 트랙백(1) | 핑백(2) | 덧글(14)
트랙백 주소 : http://lovos.egloos.com/tb/154588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한글 at 2009/11/29 12:30

제목 : 2007 - Gerhard Ertl
과학 초보자를 위한 2007 노벨 화학상....more

Linked at yongyeol님의 글 - [.. at 2007/10/22 11:13

... 0 metoo 과학 초보자를 위한 2007 노벨 화학상. 오전 11시 13분 화학 노벨상 ㅎㅎㅎ ... more

Linked at Lovos dixit : 20.. at 2011/10/09 05:21

... 안녕하세요, 화학과 대학원생 Lv. 1 로보스입니다 (_ _) 노벨상 발표 시즌이 되니 2007년[1]과 2008년[2]에 노벨 화학상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렸더니 나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마침 숙제 3개를 다 제출하고 랩 로테이션도 끝나 잉 ... more

Commented by 매치어 at 2007/10/22 14:37
꺄아~ 저같이 화학에 약한 사람을 위한 훌륭한 설명이네요.
학문적 입장에서 핵심은 마지막 문단이 아닐까요-. 물론 하버법의 풀이도 중요하겠지만 표면화학이란 학문을 거의 만들다시피 한 업적일테니까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7/10/22 20:54
아니 =_= 이론화학방 매치어 조교님께서 이 무슨 망발을...
Commented by ksh777 at 2008/12/09 09:24
쉽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포트때문에 고생했었는데 좀 퍼가겠습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12/10 09:56
ksh777님// 고맙습니다. 어디로 퍼가는지도 알려주셨으면 좋았을텐데요 ^^;
Commented at 2009/03/08 23: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3/09 08:40
비밀글님// 퍼가는 장소도 좀 알려주시면 좋을텐데요... orz
Commented by smile33 at 2009/03/15 11:38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네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9/03/15 15: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9/03/15 21:1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3/16 08:44
smile33님// 네네 ;;;

비밀글1, 2님// 에 어느 학교에서 숙제로 내준 모양이군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
Commented at 2009/09/08 21: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9/09 09:10
비밀글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
Commented at 2009/11/29 12:2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11/30 08:46
비밀글님// 이상한 점 있으면 알려주세요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즐겁게 살아야죠. :)
by 로보스
Calendar
메모장
카테고리
|소개|
|일기|
|감상|
|과학|
|과학사|
|잡념|
|작업|
* 홈페이지 ('02-'03)
* 네이버 블로그 ('05-'06)
최근 등록된 덧글
4주 뒤에 입대 저도 뭐..
by ㅋㅋ at 02/05
앗삼님// 간단히 정리하자..
by 로보스 at 01/30
개성있는 젠투펭귄님// ..
by 로보스 at 01/30
좋은글 감사합니다. ..
by 앗삼 at 12/23
안녕하세요! 겨울방학맞..
by 개성있는 젠투펭귄 at 12/18
조영래님// 방문 감사 드..
by 로보스 at 09/01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by 조영래 at 08/27
나그네님// 방문 감사 드..
by 로보스 at 06/20
hongbok님// 아마 제가..
by 로보스 at 06/20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그..
by 나그네 at 05/16
신기하네요. 음, 사실 ..
by hongbok at 04/27
hyde님// 무슨 말씀인지 ..
by 로보스 at 04/13
피보팅할때는 덧붙인 부..
by hyde at 04/09
krnchica님// 구글 번..
by 로보스 at 03/24
독일어도 잘 하시나 봐요!
by krnchica at 03/21
비밀글님// 두 번째 문단..
by 로보스 at 02/09
Barde님// 방문 감사 드..
by 로보스 at 02/09
ㄹㄹ님// 쉽게 설명하느라..
by 로보스 at 02/09
이명래님// 글과 질문, ..
by 로보스 at 02/09
최종하 교수님// 안녕하..
by 로보스 at 02/09
최근 등록된 트랙백
공정혼합물의 융해/빙결
by Adagio ma non tanto
동양학 최고수 남회근! ..
by 도서출판 부키
(연재할 수 있을지 모..
by THIS STORY ver 3.0 ..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by 도서출판 예문당 - 함께..
[책] 젊은 베르테르의..
by 월풍도원(月風道院) -..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