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독후감 쓰기 좋은 책은 문학책이다. 이런 지겹고 팍팍한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려니, 벌써 가슴이 무겁다. 독후감... 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에세이를 써야겠다. -- 그 날은, 어느 봄날이었다. 햇볕이 너무 따사로웠다. 점심 시간이 막 지난 어느 오후였다. 친구 하나와 인문사회과학동에서 걸어나오던 차였다. 앞에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2학년 첫학기에 '과학기술과 역사'를 가르쳐주신 임종태 교수님이었다. 왠지 뒷모습이 쓸쓸해보여서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교수님의 뒤를 좇았다. 교수님께서는 정말 맛없어서 학생들조차 꺼리는 학생식당에 들어가셨다. 존경하고 친애하는 교수님께서 그런 식당에서, 그것도 홀로 식사를 하신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발을 내딛었다. 교수님께서는 식당 한 구석에 앉아 외롭게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 누구도 아는 척 하지 않고,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 그 사회에서. 뒤에서 바라보니 너무도 쓸쓸해보였다. 아무 말씀 없이, 멍하니 앉아서 밥알을 우적우적 삼키고 계셨다. 나는 너무 슬퍼서, 도무지 참을 수 없어서 교수님께로 다가갔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었다. 애써 웃으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께서는 저으기 당황하신 듯 했다. 교수님 표정에서 '누구더라?'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나는 재빨리 내 소개를 했다. "아, 저 작년에 교수님께 과기역 수강한 학생인데요- 교수님께서 혼자 식사하고 계시길래 여쭤볼 것도 있고 해서 이렇게 인사 드립니다." "아, 앉아요." 교수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자리를 권하셨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교수님 전공은 (불행히도) 동양과학사였고, 나는 그쪽에 무지했다. 할 수 없이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내가 알고 있는 과학학 지식을 다 쏟아서 이것저것 질문했다. 교수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과연 교수님께서는 즐거우셨을까. 나 혼자 즐거웠던 건 아닐까. 여하간 그 날 내가 얻은 수확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스트롱 프로그램과 과학사회학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교수님께서 권해주신 책. 이 책의 필자인 김경만 선생님이 우리나라 과학사회학의 대가라고 하셨다. '김경만'이라는 이름을 잘 저장한 후 교수님과의 대화를 마쳤던 걸로 기억한다. 밑천이 다 떨어졌기에. 이 책은 말 그대로 과학사회학 개론서다. 역사 순으로 과학사회학 이론들을 다루고, 각각의 특징과 장단점에 대해 논한다. 정말 팍팍하다. 말도 어렵고 그다지 재미도 없다. 다만 이 책을 붙잡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할 때의 기쁨, 그것 하나 때문이다. 이 책 하나를 본다고 해서 과학사회학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학의 배경 지식, 현대철학의 배경 지식, 수학 혹은 과학의 배경 지식이 많이 필요하다. 다만,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얻은 것은 과학사회학의 여러 이론들과 그 개략적인 내용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을 설명하는 이런 이론, 이런 이론, 이런 이론이 있구나.' 각각의 주장과 장단점을 읽어나가면서 사회학자들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이론도 과학 이론 못지 않게 과학적이다. 특히 감명 깊게 본 부분은 마지막 장, 민속방법론적 접근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사회학 선행지식을 많이 요구해서 본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기본 철학은 이해할 수 있었다.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에버렛 해석의 입장과 같달까. 대상과 관찰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철학 안에 있어야 한다. 민속방법론적 접근 역시 비판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지만 그 기본 철학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 이런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무겁다. 역시 나도 '지식인인 척' 하는 사람에 불과한 걸까. 이건 (내가 마음에 들어한) 몽테뉴의 철학과 반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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