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 살림.


최초의 독후감인가?
양귀자 씨의 <모순>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비록 나의 독서 목록에는 없는 책이었지만.
바로 앞의 일기에서 tune님이 빌려주신 그 책이다. 반나절에 읽었으니 그다지 긴 책은 아닌 셈?

--

미치도록 시리다.
시리도록 슬프다.
슬프도록 현실적이다.

최근 소설을 많이 안 봐서 다른 소설들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에 룸메이트가 빌려줬던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수준이랄까. 혹은, 누구나 다 아는 김동인의 <감자>랄까. 그렇다. 더없이 슬픈 현실, 더없이 아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많은 부분 독백조로 진행된다. 그 방식이, 어쩌면 아린 현실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리라. 주인공의 입장에서,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걱정한다. 그래, 이게 소설이다. 오랜만에 문학의 매력에 빠지게 한 책.

최신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내용은 매우 최신이다. 아니,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안 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곳곳에서 나의 폐부를 찌르는 무서운 묘사들이 나타난다. 너무도 적나라해서, 너무도 공감돼서 무섭다. 저자의 마력에 홀린 것 같다. 읽는 중간 중간, 숨을 돌리고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책을 덮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책에 중독될 것 같았다. 혹은, 펑펑 울어버릴 것 같았다.

맨 뒤에 있는 저자의 집필 노트에 보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전부 '처음' 읽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 이상의 스포일은 하지 않으련다. 다만 오랜만에 읽은 문학이 나를 이렇게 흥분시켰다는 점은 재차 강조하고 싶다. 역시 문학은 문학만의 매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한참만에 만난 문학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행히도.

소설을 보면서 감동 받은 몇 구절.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 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 주지 못하여 있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형상을 보여 줄 수 있다.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 사진을 찍었는데 흔들렸네. 틀린 구절이 있을지도.

 
by 로보스 | 2006/07/14 23:35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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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une at 2006/07/14 23:49
재미있었다니 다행이네요. :) 9년 전의 책이지만 '요즘 사람'을 잡아내는 면에서는 굉장히 즐겁고 뛰어난 책인 거 같아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6/07/14 23:52
아 네- 정말 좋은 책이에요 ^^ 감사합니다-! 제가 문학을 본지 너무 오래된지라 무지한 소리를 했을지도... -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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