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홍성사.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곤 한다. 나야 뭐 못해신앙이고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기독교에 대해 교육받아왔으니 이런 책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하도 주위에서 읽어보라 성화여서 결국 못 이기고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일단 하나 짚고 넘어가자. 제목을 '순전한 기독교'로 한 것은 두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원제는 Mere Christianity. 직역하면 '순전한 기독교', '간단한 기독교' 정도가 될텐데, 문제는 일반적으로 우리말에서는 '순전한'이라는 말이 innocent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mere라는 단어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없다. 반면 innocent는 일반적으로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즉,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제목이 자뻑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첫번째 문제다. mere과 innocent가 우리말에서 구분되지 않는다는 문제. 두번째 문제는 이 문제와 연결되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는 녀석인데, 전문용어로 하자면 한정적 용법과 서술적 용법의 혼동이랄까. 서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원래 루이스가 의도한 제목은 '군더더기를 다 걷어내고 순수하게 정제한 기독교'이다. 즉, 기독교 교리 중에서 가장 핵심에 있는 애들만 모았다는 뜻이다. 반면 독자들은 이 제목만 보고 '기독교가 순전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충분히 있다. 정리하자면 루이스는 한정적 용법으로 중립적 단어 mere를 쓴 것이지만 독자들은 '순전한'을 자뻑 의미의 서술적 용법으로 받아들여 문제가 될 수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차라리 (좀 촌스럽기는 해도) '기독교의 핵심' 같은 제목이 낫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잡설이었고- 이제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기독교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1부는 사실 나에게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중세 신학 이후로 계속 반복되는 신의 존재성 논증. 엄밀한 과학도의 논리로 따질 때 잘못된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고, 굳이 이런 식으로 신의 존재성을 증명해야 하나 -_-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 요약하자면 사람에게는 선험적으로 선과 악의 개념이 있고 모든 민족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도덕률을 창조한 절대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내용. 이거 왠지 토마스 아퀴나스의 논증에서도 본 것 같은데? -_-;; 나는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고 다만 '공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논증에 대해서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기던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책의 3부와 4부였다. 1부와 2부에서 계속 '무지한 평신도'를 자처하며 쉽게쉽게 설명하던 루이스가 갑자기 박식한 합리주의자가 되어 성경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지식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 (사실 뭐 루이스의 모습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루이스가 초점을 두는 독자가 달라졌다고 해야겠지만.) 일례를 들어보면, 루이스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된 그리스도'라는 개념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부분에서는 신플라톤주의의 '일자'가 떠올랐다. 성 어거스틴이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지?) '사람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물건을 만든다.'로부터 유추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낳았고,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었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그 실체에 대해 설명해준 적은 없었다. 그걸 이렇게 명료하고 쉽게 설명하다니. 이 책에는 이외에도 기독교 교리에 대한 여러가지 훌륭한 설명들이 가득하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비기독교인들에게 권하곤 하는데, 나는 이 책은 사실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도 고민도 없이 편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경종이요 교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서 좀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민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루이스는 기독교 교파들이 갈린 이유에 대해 그 부분은 전문 신학자들이 논의할 부분이라면서 토론을 피한다. 루이스 같은 위인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한낱 평신도들이 한 하나님, 한 예수님, 한 성령님을 믿는 다른 교파를 가지고 이단이라 주장하는가? 안타깝다.)
by 로보스 | 2007/10/10 11:25 | |감상| | 트랙백 | 핑백(2)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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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았지만 =_= 공대 출신인 리더 형은 좋아했다; 그 형이 수료 기념으로 사준 책이 이 책이다.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가 쓴 책으로, &lt;순전한 기독교&gt;와 더불어 나 같은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나. 이 책에서는 스크루테이프라는 노련한 악마가 조카 악마인 웜우드에게 보내는 가상의 편지가 31통이 ... more

Commented by at 2007/10/10 17:26
다른 교파를 이단이라 주장하는 사람은 없죠^^;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7/10/10 18:27
교파라고 생각하면 이단이라 주장하지 않겠죠. 자신들의 좁은 시야만 갖고 다른 '교파'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을 이단이라 주장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일례를 들어 저는 가톨릭도 기독교의 한 교파가 될 수 있다 생각하는데,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을 교파가 아닌 '이단'으로 보는 것 같더라고요. 오해가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쓴 겁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7/10/10 20:18
루이스형님의 구라는 꽃구라 ㅠ.ㅠb......
Commented by 이상혁 at 2009/01/18 23:54
저는 문과생이라 그런지 선과 악의 개념 부분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1/19 08:42
이상혁님// 반갑습니다. 이 옛날 글에 ^^;;; 그 부분에서 감동을 받으셨군요. 확실히 같은 책이라고 해도 독자에 따라 각기 다른 감동이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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