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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책을 꼽으라면 그 중에 반드시 들어가는 책이 바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_- 중 3 때까지 창조과학 빠돌이로 살았던 나에게, 대학교 3학년 때 마주친 <이기적 유전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책을 통해 진화론이란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때마침 생화학을 수강하면서 그 진화론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진화론에 대한 내 태도는 180도 돌아서게 되었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너무 극단적이다. <확장된 표현형> 서문에서 그는 엄청난 저자세로 겸손한 '척' 하는데, 결국 그의 주장은 매우 과격하다. 이글루나 바위에서 종종 보이는 도킨스의 언행들 역시 너무나도 극단적이다. 게다가 "기독교, 나랑 싸우자!" 하는 도킨스의 태도는 기독교인인 나에게 불편한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결국 내가 안착한 곳은 굴드의 품이다. 나에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못지 않게 굴드의 <풀하우스>는 충격적이었고, 하지만 굴드의 글은 도킨스의 그것만큼 과격하지 않았기에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래봤자 한 권 읽은 주제에...) 이 책,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는 굴드에 대한 내 애정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은 굴드가 자신의 전공, 고생물학의 이야기를 화려하게 펼친 책으로 다양한 삽화와 굴드의 말빨 덕분에 무척 즐거운 책이다. 책은 '버제스 혈암(너무 어려운 단어다 -_- 내가 배운대로는 '셰일')'에서 발견된 일련의 화석들을 그 주인공으로 삼아 고생물학 논쟁에 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풀어놓는다. 덕분에 책 두께가 많이 두꺼워서 좀 부담스럽지만 -_-;; 간단하게 스포일하자면, 버제스 셰일에서 발견된 화석들에 대해 '진화수 모형'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잘못된 해석을 내렸는데, 70년대 새로운 해석이 대두하면서 '진화수 모형'의 뼈와 살이 분리되었다는 내용이다. 굴드는 결국 이걸 통해 '진화수 모형'이 잘못되었음을 설파하고, 나아가 '진화 = 진보'라는 하나의 고정관념을 파괴하려고 노력한다. 굴드는 '생명 테이프 되감기'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생명의 역사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쭉 되감은 후, 다시 45억년전부터 시작한다면 지금과 같은 생명계가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당연하게도 굴드가 기대한 대답은 "아니오."이다. 굴드는 생명 현상이 결국 '우연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결정론자들은 굴드보다 도킨스를 더 좋아하는지도.) 나는 읽으면서 '이 책을 과학사나 과학사회학 읽기 숙제로 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는 하나의 이론이 완전히 뒤집히고 새로운 이론이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은 '과학자'의 눈을 통해 바라본 과정이다! 굴드는 (아 지금 못 찾겠는데) 책 어디선가에서 이런 요지의 말을 남긴다. "모든 과학 이론이 '실재'라고 믿는 사람이나 모든 과학 이론이 '허구'라고 믿는 사람이나 모두 잘못되었다. 훌륭한 자세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아 굴드 너무 좋아 >_< 아참, 이쯤에서 이 책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1. 굴드는 '진보'의 진화를 믿는 자들이 보통 기독교인이었음을 지적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고, 따라서 백발 양보해 진화가 일어났다 해도 그 흐름은 '인간을 향해' 진보해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뭐, 아마 역사적으로는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을 듯. 되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죄다 창조과학 쪽에 가서 깸치고 있고 -_- '진보'의 진화를 믿고 있는 건 대부분 무신론자들일 것 같다. 이미 과학 교과서 자체도 그 따위로 만들어져있는데 뭐. 진지하게,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가 이 따위인건 좀 반성해야 할 듯. #2. 굴드는 책 중간중간 '신'이라는 존재를 도입하는데, 일부 극단적 유신론자들은 이걸 갖다가 "봐라 굴드도 신을 인정하지 않냐!" 라면서 큰소리를 칠 것 같다. 하지만 불행히도 여기서 굴드의 신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관조적 신, 하나의 관찰자(observer)에 불과한 신이다 -_- 그는 테이프를 돌렸다 놨다 하면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을 '우연'에 맡길 뿐,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않는다. 제발 뻘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 #3. 굴드의 이론을 따르자면, 결국 고생물학도 다시 '인류 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 우연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뭐 이런. 그런데 전에도 썼지만 인류 원리는 하나의 과학적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볼 수 있고, 이는 동일한 원리로 신의 존재성을 입증하는 증거에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우리가 선택된 것은 '우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선택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은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대상들일테고. 아아 점점 길어지고 있다 젠장 =_= 끝으로 고생물학과 역사학의 연관성을 한 번 짚어보고 글을 맺겠다. 책을 읽으면서 사무치게 느낀 것이, 고생물학 연구는 얼마 안 되는 유물과 기록 속에서 옥석을 골라내서 일관된(consistent) 설명을 만들어야 하는 역사학 연구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아마 과학자인 고생물학자들은 그깟(?) 인문학과 하나로 묶이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낄지 모르겠는데 -_- 제 느낌이 그런걸 어쩌겠습니까. 이 두 학문 간의 교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서로의 방법론이나 이론에 대해 논해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활동이 되지 않을까? 이 책, 꽤나 괜찮은 책이다. 진화론이나 과학 연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좀 전문용어가 많이 난무하는 난점이 있긴 한데 -_- 굴드 아저씨가 최대한 쉽게 풀어써주려고 노력했으니 (허나 번역자가 다시 어렵게 압축한 것 같다만 ㅋㅋ) 조금만 노력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한 번 도전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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