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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길어요. 읽으려면 마음 잡고 읽으시길 -_-;;
사전에 따르면 상대주의(relativism)란 "절대적으로 올바른 진리란 있을 수 없고 올바른 것은 그것을 정하는 기준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듯이, 상대주의 역시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를 상대주의자라 생각하지만 그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많은 오해를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내가 믿고 있는 상대주의에 대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과학은 진리입니까 현 시대에 최고로 성공한 학문은 뭘까? 대부분의 사람이 그 학문의 결론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고, 그 학문의 권위자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하는 그런 학문. 뭘까? 물어보나마나, 과학이 정답일 것이다. 오죽하면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말이 나올까. 그 누구도 "침대는 신학입니다" "침대는 사회학입니다" 하지는 않잖아? 뉴턴 이후, 과학 지식은 갈수록 정확해지고 갈수록 정밀해지고 있다. 양자전기역학(QED)에서 이론적으로 유도되는 미세구조상수 α는 실험값과 고작 10-15 이내의 차이 밖에 안 보인다고 한다[주]. 이를 가리켜 많은 과학자들은(예를 들어 와인버그나 도킨스) 과학이 '진리'에 점진적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의 과학이 '진리의 근사값'으로 충분한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주: TN THEME 항목].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떤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100% 설명해낼 수 있는 이론이 있다고 하자. (사실 나는 과학이 자연을 100% 설명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대해서조차 회의적이다. 하지만 백만번 양보해 100% 설명했다치자.) 그러면 그 이론은 그 대상의 '진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설(Searle)이 제공한 '중국어 방 논제[주]'를 도입해 우리의 문제를 풀어보자. (설은 강인공지능(strong AI)론자들을 반박하기 위해 이 모델을 만들었지만, 나는 이게 우리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가있는 로보스가 실수로 후진타오 싸대기를 날리는 바람에 감방에 가게 되었다. 이 감방은 창문도 문도 하나 없고 오로지 컴퓨터 한 대만 외로이 있는 한심한 감방이다. 컴퓨터는 밖에 있는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고, 인터넷이나 그 외의 어떠한 네트워크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간수 하나가 로보스를 불쌍히 여겨 열라 두꺼운 책 한 권을 던져줬는데, 그 책에는 이러이러한 중국어 질문이 들어올 때 이러이러한 중국어를 쓰면 된다는 내용이 모든 케이스에 대해 다 적혀있었다. 자, 로보스는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모른다(고 하자). 하지만 외부에 있는 누군가가 로보스에게 컴퓨터를 통해 질문을 던질 때, 로보스는 그 책에 적힌대로 대답을 할 수 있다. 아마 밖에 있는 사람은 로보스가 중국어를 아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질문. 그럼 로보스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건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로보스가 중국어를 주절거리고 있더라도, 그 의미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게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 이제 이 문제를 과학의 경우에 적용시켜보자. 우리는 자연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싸한 이론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론의 경우, 자연에게 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아니, 여기서도 백만번 양보해 '질문'에 따른 '대답'을 100% 예측할 수 있다 치자. 그렇다해서 우리가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직 우리는 양자역학의 본질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주] 양자역학을 써먹고 있는데!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광화문에 매달려 있는 뉴턴이 아무리 '네거리에서 자동차들이 움직이는 현상'에 대한 멋진 역학 모델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리고 그 모델을 가지고 자동차의 움직임들이 전부 설명된다 해도, 내부의 운전자가 고려되지 않는 한 '진리'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과연 '진리'를 알 수 있는가? "없다." 이것이 내 결론이다. 과학 이론들은 전부 '그럴싸한' 모델들일 뿐이다. 그것이 자연 그 자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일례를 들어, 과학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원자 모델들이 떴다 사라져갔다. 톰슨의 건포도 푸딩 모형을 보자. '전자' 밖에 몰랐던, 혹은 '전자'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김춘수의 '꽃'을 떠올리삼!) 19세기 말에는 그 모형이 '진실'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핵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푸딩 모형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사실'로 배우고 있는 현 과학 이론들도 마찬가지다. 중력의 역제곱 법칙?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그저 '그럴싸한 이론'이었던 걸로 판명날지 모른다[주]. (생물학의 중심 교조 central dogma만 해도 깨진지가 언젠데. :P) 정확성과 정밀성의 상징인 과학조차 '진리'라고 말할 수 없을진대, 다른 모든 학문이야 말해 무엇하리요. 모든 이론은 하나의 설명 모델에 불과한 것이다. 계몽주의를 경계한다 자, 그럼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와보자. 과학이야 저 높은 천성에서 자연과 함께 놀고 있으니 이번에는 우리와 같이 뒹구는 학문을 살펴보도록 하자. 대표적으로 하나를 찍어보면, 그래, 경제학을 한 번 살펴볼까. 사실 경제학은 과학만큼 정확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이론들이 공존할 수 있다. 즉, '비슷한 수준의 설명을 하는' 모델들이 여럿 경쟁하는 상태인 것이다. 자, 그럼 이 중에서 우리가 택해야 하는 최선의 선택은 뭘까? 어떤 이론이 가장 좋은 이론일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은 그냥 "다양한 이론을 용인한다."이다. 왜? 다양한 이론이 서로 경쟁하면 결국에는 그 중에 가장 효과적인 이론이 선택될테니까.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장 효과적인 이론을 선택한 국가가 결국은 승자가 될 것이다. 이게 바로 현대 생물학 최고의 가설, '진화론'의 메카니즘 아닌가. 진화론에 따르면, '진화'란 항상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환경이 달라지면 당연히 자연 선택되는 종도 달라지게 된다. 경제학 이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이론도 만능 맥가이버칼은 될 수 없다. 다만 특정 상황에 성공적인 이론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이론이 성공적일지는 이론들이 경쟁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알 수 없다. 결국 '진화'의 결과를 봐야 아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다른 이론들을 용인하지 않는 독단적 태도를 경계한다. 이런 독단적 태도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계몽주의'이다. 계몽주의에도 물론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겠지만, 나는 특히 한 가지 이론만을 신봉하며 그것을 온누리에 널리 전하고자 하는 계몽주의자들을 주적으로 삼겠다. 이들은 최선의 선택 메카니즘을 방해하는 최고의 악당들이다. 이들이 바라는대로 모든 사람이 다 '계몽'되는 순간, 학문의 발전은 쫑난다고 생각한다. 일례를 들어서 설명해보겠다.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나오는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유럽 문명이 중국 문명을 이길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보자. 그 책에서 제시한 답은, 유럽에서는 모든 나라들이 고만고만하게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강한 놈이 살아남는' 시스템이 되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강력한 중앙 집권 시스템이 구축되어 '한 사람이 결정한대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결정한대로 움직이는' 시스템은 설령 그 사람이 일관된 자세로 통치에 임할지라도 다양한 환경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없다. 이것이 19세기 이후 유럽과 중국의 역사를 결정지은 주 요소인 것이다. 혹시 이건 '학문'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 같나? 그럼 학문 문제로 돌아가서 다른 예를 들어보지. 어째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이론이 2000년 동안 서양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을까? 간단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자들이 개떼같이 양성됐기 때문이다. 이 철학자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을 떠들어대기에 바빴고, 그 중 가장 '설득력이 큰' 이론이 사람들에 의해 수용된다. 설득력이 크다는 말은 곧 다양한 환경에서 전부 적용가능하다는 말이고, 이 검증 과정이 까다로운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몇백년 지속된 끝에 결국 아리스토텔레스가 선택된 것이다. 이런 녀석이니 2000년 버티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만약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보다 더 강력한 이론이 있었다면, 그 아이가 2000년, 혹은 더 길게 서양 사회를 지배했을지도 모르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 '과학'이 그 레벨이다. 아마 이 놈은 16세기에 탄생한 이후로 2000년 넘게 인류를 지배하지 않을까 싶다.) 이와 같이, 다양한 이론이 경쟁하는 가운데서 선택된 이론은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혹은, 포퍼 식으로 말하자면, 쉽게 '반증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섣불리 '계몽'하려드는 것은 되려 악영향만 끼칠 뿐이다. 계몽과 설득의 차이 계몽주의는 거부하면서 동시에 설득을 통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도대체 계몽과 설득의 차이가 뭐길래? 간단하다. 대등한 의견 교환 이상의 무언가가 개입되면 그건 계몽이다. 예를 들어 권력을 개입시킨다거나, 패서 의견을 바꾸게 한다거나, 혹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주입식 교육을 시킨다거나. (자, 여기서 이 정의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의 계몽도 많겠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계몽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고자 한다. '계몽'이라는 신성불가침한 단어를 여기에 쓰는 게 불쾌하면 '강제주입'이라는 단어로 대체해서 읽으시길. 한 가지 밝혀두고 싶은 것은 내가 '계몽'이라는 단어 자체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몽(啓蒙)이란, 말 그대로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는 말이다. 누가 진리를 알길래, 무엇이 어리석고 무엇이 똑똑한건지 판단한단 말인가?) 계몽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는 이유는, 계몽하는 사람들이 그 주장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가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과 공산 중국의 문화대혁명[주] 아니겠는가. 자신의 주장이 '옳기' 때문에 '옳지 못한' 개념을 가진 반동들은 전부 '개조' 내지는 '멸종'시켜야 한다는. 물론 현대 사회에서 이런 극단적인 예가 발생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계몽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리면 그것이 극단적인 절대주의/우월주의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합리성보다는 '권위'에 의존하는 "예술 비평"에 대해 비판적이다. (물론 합리적인 예술 비평도 많이 있다. 나는 그렇지 않은 놈들에 대해서만 비판을 할 뿐이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의 시 교육인데, 나는 얼마 전 어느 재수생으로부터 이와 관련된 수능 언어 영역 문학 파트에 대한 불만을 들은 바 있다. 하나의 시에 대한 해석이 이게 옳다 저게 옳다,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문학은 하나의 예술일진대, 각자 자기가 느끼는 바가 바로 그 시의 해석이 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는 그저 몇몇 시 비평가들의 '권위' 때문에 그들의 해석이 '정답'이 된 것일 뿐이다. 교육의 형태를 빙자한 일방적인 폭력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은 우매하다? 많은 이들이 '대중은 우매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혹은 대화를 포기하고 나 혼자 고고히 살다 가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정말로 대중이 우매할까. 나는 대중이 '우매'해진 것이, 그들이 계몽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너무도 잘 계몽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계몽이 너무나도 성공적이어서, 90% 이상의 대중이 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중이 가장 우매했던 시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교육에 힘쓴 시기였다.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주] 기간에 많은 농민들을 교육시켰고,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마오어록(毛語綠)을 편찬해 홍위병들에게 공부하게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광기와 혼란 뿐이었다. 히틀러의 제 3제국도 철저한 교육을 단행했다. 2006년 북한 어린이들의 소학교 입학률은 99%를 가뿐히 넘는다[주]. 이걸 보고 많은 자들은 이 정권들이 폭압적인 정권이기 때문에 '강제 교육'을 시켰을거라 생각하지만, 그게 지금의 '의무 교육'과 다른 게 뭔가? 그들이 가르친 '과목'과 우리의 '과목'이 다르다는 거? 사실 대한민국 대중의 우매함도 '훌륭한 계몽 교육' 덕분이다. 우리는 어릴적부터, 도덕책에서 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요 북한은 민족의 통일을 방해하는 나쁜 세력으로 배웠고, 국어책에서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배웠고, 국사책에서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고 외국을 한번도 침범하지 않은 민족이라고 배웠다. 애국심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국수주의와 선민사상이 우리나라 대중들을 '계몽'한 것이다. (물론 국수주의와 선민사상이 자유경쟁 속에서도 '설득력 있는' 사상으로 뽑힐 수 있다. 근데 일단 자유경쟁부터 시켜달라고.) 왜 이 나라 대중이 황우석을 보고 그렇게 갈채를 보냈는가? 환자와 그 가족들은 그렇다쳐도, 아무런 상관도 없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까지 박수를 치며 피디수첩을 비난했다. 그 근원이 무엇인가? 왜 이 나라 대중이 고작 영화 하나 비판했을 뿐인 진중권 교수에게 있는대로 욕을 퍼부었는가? 왜 이 나라 대중이 "김구는 테러리스트다" 한 마디에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지랄을 해댔는가? 왜 이 나라 대중이 뭐만 나오면 다 한국이 한 거고 한국인이 한 거라고 자랑질을 해대야 하는가? 이 우매함의 원천이 바로 그 잘난 '의무 교육' 아닐까? 2006년 현재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96.5%, 중학교 취학률은 97.5%에 달한다. 하지만 초중등학교 과정에서 '과목의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제2외국어 정도가 예외일까) 자그마치 600만명의 학생들이 동일한 교육과정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주]. 이런 상황에서 생각의 다양성, 사상의 풍요로움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가 아닐까. 나는 교육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교육을 하려면 천편일률적인 '강압적 교육' 대신 다양한 선택권을 제시하는 풍요로운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7차 교육 과정은 선택권을 중시한다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정작 일선 학교에서는 애들 보고 과목선택지 나눠준 후 한 과목만 찍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혜로운 대중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헛된 기대인 것이다.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어 다양한 사상들이 꽃을 피우고, 그 속에서 훌륭한 사상들이 살아남아 후세에까지 전해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라면 우매한 개인은 있을지 몰라도 우매한 대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상대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이 상대주의를 전파하기 원하는 이유이다. @ Inspired by bluebrown, 다양성을 옹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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