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기획, <상대성이론, 그 후 100년>, 궁리.

2005년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론을 발표한지 꼭 100주년 되는 해였다. 그걸 기념하여 물리학계에서는 여러가지 행사를 준비했는데, 이 책은 그 행사의 일환으로 발표된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정재승 교수님(뇌과학)과 홍성욱 교수님(과학사)이 집필진으로 참여하셨고, "상대성이론이 20세기에 미친 영향에 대해 여러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자"는 아주 바람직한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 참여해서 글을 썼다. 알라딘에 올라온 독자 서평들만 봐도,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품은 호감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대해 조금 심한 쓴소리를 할까 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상대성이론의 물리학적 설명 및 아인슈타인의 생애, 2부는 사회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상대성이론의 흔적에 대해 다루고 있다. 1부는 그럭저럭 봐줄만 했는데, 2부는 솔직히 완전 갖다붙이기의 최고봉이다. 특히 예술 쪽에서 상대론을 갖다붙이는 꼴을 보고 있으면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다. 하다하다 못해 나중에는 다양한 문화의 '상대성'을 깨닫게 해준 게 상대성이론이라나? 의사과학을 과학으로 여기게 해주는 '상대성'을 처음 시작한 게 아인슈타인이라느니(149쪽),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상대성'을 깨닫게 해준 게 상대성이론이라느니(266쪽), 아주 "쇼를 하라!" 이런 글들이 소칼이 지적한 '알지도 못하면서 과학 끌어붙이기'의 대표적인 예 아닐까?

하나 더 따지자. 여기 글을 쓴 '비과학자'들 중에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들 어디서 교양과학서는 하나씩 참고문헌으로 갖다붙여놨더라. 그런데 이보세요들, 그거 읽고 상대성이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확신을 갖고 글들을 쓰시나 모르겠네요. 멋지게 글 쓰다가 버젓이 헛소리를 써놓은 사람도 있고. 일반상대론이 광속도 불변의 원리를 뛰어넘었다고요? (192쪽) 북극의 시계가 적도의 시계보다 늦게 간다고요? (216쪽) 세상에나, 어느 과학자가 그런 소리를 합디까? 어떤 허접한 책을 보고 쓰셨는지 모르겠지만, 공부 좀 많이 하고 쓰시지 그러셨어요.

글과 글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전혀 없는 것도 눈에 띄었다. 여기 참여하신 '비과학자'들께서는 자신의 과학적 기반이 없음을 일부러 의식하셨는지 꼭 상대론에 대해 요약 한 번씩 해주시고 지나가신다. 저기요, 우리는 앞에서 이미 충분히 다 읽었거든요? 그것도 우리는 물리학자들한테서 직접 들었다고요. 당신들이 교양과학서 읽고 이해한대로 정리 안 해 줘도 다 알아요. 제발 사람들 오해하게 만들지 말아줘요. 뭐, 이건 2부 뿐 아니라 1부에서도 계속 나타나는 현상. 했던 소리 또 하고, 다른 사람이 한 말 그대로 또 하고.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필자들도 이런 쓰레기글을 쓰고 싶어서 썼을까? 자기들도 쓰면서 헛소리라는 걸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상대론 100주년이라는데, 내가 아는 거 모르는 거 다 갖다붙여서 이쁘게 써줘야지- 뭐 그런 심정이었을 게다. 하지만, 솔직히 짜.증.난.다. 비슷한 제목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슈뢰딩거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발행 5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책으로,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훑어본 결과 여기 참여한 사람들은 죄다 과학자였다. 이들은 슈뢰딩거의 책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고, 그 내용이 현대에 와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도 똑바로 알고 있었다. 이 책과 비교할 때 완성도가 너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너무 지나친 생각을 하는 걸까?

솔직히 상대성이론, 그거 철학에는 몰라도 미술이나 음악에 영향 1 ng도 안 끼쳤으리라 확신한다. 20세기 미술이나 음악에 상대론이 미친 영향 같이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에 대해 글을 써오라니, 정재승 교수님도 너무하신 거 아닌가? 차라리 나는 마지막 글에서 다루는 주제인 '생활 속의 상대성이론'이 2부에서 제일 쓸만한 소리인 것 같았다. GPS가 상대론 때문이라는 거, 레이저 원리(stimulated emission)를 처음으로 지적한 게 아인슈타인이라는 거, 왜 그런 얘기를 깊이 있게 안 다루고 헛소리에만 집중하냐 이거다.

이 책에서 그나마 감명 깊게 본 구절이 하나 있어 소개한다. 242페이지에서 발췌한다.

요즘 과학잡지나 과학교양서에서 다양한 일러스트를 곁들여 상대성이론을 설명하고 있어 얼핏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성이론이 빚어내는 기이한 효과들에 대해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뿐이지 그러한 결과를 내놓게 된 과정에 대해 수학적·물리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니지 않은가. 흔히 대중문화가 저지르는 스테레오타입화 경향은 사안의 본질보다는 본말이 전도된 이미지만을 쫓아다니게 만들기 쉬운데, 아인슈타인의 경우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네네, 맞습니다. 덧붙여 이 책은 상대성이론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헛소리 만드시느라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by 로보스 | 2007/05/13 02:09 | |감상|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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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될 정도로 강력하며, 심지어 Kim-Gordon theory라는 이름까지 붙었을 정도이다. 이런 분이 쓰신 '과학'이니,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나대는 사람들(예컨대 이런 책?)이 쓰는 '과학'과는 다르겠지? 여기서는 자연과학의 방법론과 윤리학, 그리고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한다. 2부로 들어오면 이제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관 ... more

Commented by 바죠 at 2007/05/13 09:46
의미있는 지적이십니다. 저는 책을 읽지는 안았습니다.
대개, 출판을위한 출판들을 보면, 분명, 책이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저런 책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7/05/14 22:37
1. 거기 글 쓴 사람들. 전부 자기가 헛소리하는거 모릅니다. -_-;
그래서 제가 인문학자들을 싫어해요. 과학으로 보면 헛소리인게 뻔히 보이는걸 좋다고 하니. -_-;
2. 스테레오타입은 어쩔 수 없는거 같아요. 과학을 이해하려면 수학적 언어가 필요합니다. 영어를 하나 더 공부하라는 이야기인데.;
수학으로 쓸 걸 말로 풀어주는 역할이 필요하기는 하지요. 어차피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만족하니까요. 혹여나 그게 새로운 생각의 장을 열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7/05/15 09:29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

보드리야르 같은 사람들이 과학으로 헛소리 만든다고 과학자들이 길길이 날뛰는데요, 어쩌면 인문학과 과학은 언어 자체가 다른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과학에 맞지 않는다고 인문학을 전부 배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인문학도 나름대로의 체계를 갖고 있으니까요.

제가 이 책을 이렇게 '까대는' 이유는 나름 과학 교양서라는 책이기 때문이지요. 아예 인문학 책인데 과학으로 헛소리 하는 것까지 어쩔 수는 없지만 과학 책의 이름을 달고 이런 짓을 하는 건 문제가 있죠. 비슷한 예로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같은 사이비 과학서가 있겠습니다. -_-;
Commented by 다크초콜릿 at 2007/08/31 01:46
서점에서 좀 들춰 보다 덮었지만, 심히 공감되는군요... 심지어는 학자라는 사람들도 상대성 이론에 그 어떤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워낙 슈퍼스타라서 그런 걸까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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