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 건 양장본이 아니지만 한 질을 다 모아놓은 사진이 없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한 것은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회사에 있는 서점에서 가끔 책을 한 권씩 사오시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을 덥썩 사갖고 오셨고, 그 이후 지금까지 이 책과 하나의 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 책 소개를 읽었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일년에 한 권씩, 평생을 바쳐 쓰는 책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과연 완결할 수 있을까?' 이후 매년 한 권씩 발간될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꼬박꼬박 이 책을 사오셨고, 나는 중학교 졸업 때까지 매년 로마 역사를 조금씩 따라갈 수 있었다. 기숙사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이 인연은 끊어지게 되었다. 그 때부터 아예 책을 손에 잡지 않게 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계속 신간이 나올 때마다 사오신 모양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번 겨울. 집에 가보니 내 책꽂이에 <로마인 이야기>가 제12권까지 꽂혀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책이 제9권이었으니까, 계속 사오시던 아버지께서도 아들이 책을 안 본다는 사실을 아신 모양이다. 조금 죄송한 마음을 갖고 제10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고, 내가 제14권을 끝낼 즈음하여 제15권이 출시되었다. 제13권부터 제15권은 내 돈으로 사서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요새 아버지께서는 제13권을 읽고 계신 모양이다. 나는 이 책을 최고의 로마사 교양서라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서양 최대의 제국이었던 로마 제국의 웅장함과 위대함을 알려주고, 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준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 책을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교양서로서 이만한 대작이 이만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겨울에 읽은 부분이 바로 '시오노 나나미판 로마제국 쇠망사'로 알려진 후반부(제11권-제15권)이다. 기원전 8세기에 건국되었던 로마가 제정으로 돌입한 것이 기원후 1세기. 이후 2세기의 영광을 거쳐 3세기부터는 멸망의 길에 들어선다. 결국 기원후 5세기에 이르러 서로마 제국은 멸망한다. 로마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졌는가, 이 300여년의 기간을 저자는 실감나게 묘사한다. 로마인 이야기 전반부에서 보여줬던 박진감 넘치는 전투 신들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이러한 우울한 침체까지 잘 묘사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 <로마인에게 묻는 20가지 질문>에 보면 "신은 세부에 깃들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비슷한 심경이다. 내가 감히 무엇을 요약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감탄할 뿐이다. 게다가 더욱 훌륭한 점은 바로 번역이다. 번역가들이 많이 있지만 '제대로' 번역하는 사람은 보기 힘든데, 이 책을 옮긴 김석희 씨는 '제대로' 번역하는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전혀 번역문투가 나지 않아서 좋다. 마치 원저자가 쓴 것 같다. 뭐, 그 번역 실력이야 이미 번역상 수상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되겠지. 다만 내가 김석희 씨의 번역 실력을 피부로 느낀 일화가 있어 여기 기록해둔다. <로마인에게 묻는 20가지 질문>이라는 책의 원제는 <ローマ人への20の質問>이다. 직역해보면, '로마인에의 20[개]의 질문'이다. 이렇게 번역을 하면 과연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걸 삭삭 돌려서 '로마인에게 묻는 20가지 질문'으로 번역한 센스만 봐도, 역자의 번역 능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비록 "~를 생각하면 유쾌하다."를 지나치게 많이 쓰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_-;; (뭐 이거야 원저자가 많이 쓰는 말투일지도-)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의 관점이 제국주의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로마 '제국'을 찬양한다. 물론 로마 제국이기 때문에 찬양받을 점도 있겠지만, 이 책을 보고 제국으로 회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지 모른다. 게다가 계급제의 효율성을 근거로 계급제를 옹호하는 모습도 보인다. 물론 당시에는 계급제가 보편적인 제도였지만 만민평등주의가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서 계급제를 주장할 수는 없다. 역시 일부 독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저자가 기독교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지 않았는지, 성 암브로시우스에 대한 평가 등에 나타나는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사뭇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훌륭한 책이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몇 번이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완결을 축하드립니다, 시오노 나나미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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