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베히, <다윈의 블랙박스>, 풀빛.

창조과학은 의사과학(pseudoscience)의 대표적인 예로 알려져있다.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가면 이들의 주장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미 그 논리성이 파쇄된 근거들까지 움켜쥐고 그걸 근거로 창조론을 주장하는 모습이 종종 나타난다. 일례로 '진화는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이미 몇십년 전에 논박된 주장을 계속 변신시켜가면서 아직까지도 붙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본 글 중에는 심지어 생물의 조상인 무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진화론이 허구라는 주장을 펼치는 한심한 주장도 있었다.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수많은 원소들은 별 내부에서 핵융합을 거쳐 만들어지거나 별이 폭발할 때 순식간에 핵합성을 통해 생성된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결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을 공부하는 과학도가 창조과학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통념은 반감과 거부감일 수 밖에 없다. 창조과학의 한 지류를 구성하고 있는 지적설계론(ID: intelligent design)도 마찬가지다. 많은 과학도들이 지적설계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를 사이비과학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과연 지적설계론이 사이비과학 밖에 되지 못하는가? 나는 그런 의문을 품고 이 책을 손에 잡았다.

이 책에서 필자는 이 책의 3장부터 다섯 개 장에 걸쳐 여러가지 생화학 현상들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인다. 예를 들면 분자 모터(molecular motor)를 갖고 있는 섬모와 편모, 혈액 응고 연쇄반응(cascade), 면역 시스템 등이 이 책에서 다뤄지는 주제이다. 필자는 이들의 부속품들이 얼마나 상호의존적인지, 그리고 부속품 하나의 부재로 인해 얼마나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는지 설명한다. 결국, 하나의 단백질이 '우연히'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사건으로는 이러한 시스템을 구성할 수 없음이 입증된다.

이런 시스템들은 진화론적 설명이 매우 어렵다. 필자는 이걸 보이기 위해 수많은 저널과 교과서를 뒤졌고, 어떠한 논문도 합당한 진화적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음을 보였다. 실제로 내가 갖고 있는 생화학 교과서에서도 이들 시스템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은 빠져있다. 필자는 여기서, 진화론적 설명이 불가능한 대상에 대해 '지적 설계자'를 도입하는 것이 왜 비과학적인가를 묻는다. 필자는 이것이 '초자연적 존재를 거부하는' 과학의 중심철학 때문이라면서, 이것은 과학의 본질과 무관하므로 도입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이다. 아직 진화론으로는 이런 시스템들을 설명할 수 없다. 미래에 좋은 모델이 발견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까지나 그걸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필자는 그걸 타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적 설계자를 제시한 것 뿐이다. 나도 한 때 창조론 책들을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는데, 그 책들은 보통 '과학자'스럽지 않은 책들이었다. 진화론을 공격하는 초점이 전혀 비과학적이라거나, 과학적인 근거라고 내세우는 것들이 하나 같이 헛소리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필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만 지적 설계자에게 떠넘긴다. 그는 심지어 최초의 단백질 분자만 설계되었고 그 이후로 50억년 동안은 진화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주장까지 한다.

사실 한국 개신교계가 이러한 ID에 대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ID가 설령 맞다고 해도, 그 지적 설계자가 꼭 신이어야 하는가. 어쩌면 누구 말대로 고도로 발전한 외계인일 수도 있잖아. 무조건 ID만 밀다가는 라엘리안 같은 단체에 의해 개신교계가 되려 공격당할수도 있을텐데... 좀 우습다. 과학을 잘 모르니 무턱대고 진화론의 대안이라니까 빠돌이 짓 하는게 아닐까?
by 로보스 | 2007/03/14 13:21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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