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겸 방명록.
공지사항 겸 방명록입니다. '대문'이라고나 할까요.

이전에는 공지사항과 방명록을 따로 가져갔는데, 어차피 공지사항을 방명록 용도로 사용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굳이 나눌 필요가 없을 것 같더군요 :) 이전 공지사항, 방명록은 내려놓고 요 녀석으로 통합합니다. 저에게 할 말이 있으시면 이 글에 답으로 달아주세요. 이하는 짤막한 공지사항입니다.

1. 무례한 덧글은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2. 허락 없이 글을 복사해가는 것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글을 퍼가실 때는 어디로 퍼가시는지 한 줄이라도 허락을 구하고 가져가시길. 사적으로 연락하길 원하시면 제 메일 lovos 골뱅이 네이버로 연락주세요.

3. 스팸 트랙백이 자주 달리는 글에는 트랙백을 막아둡니다. 혹시 트랙백을 하고 싶은데 막혀 있다면 답글을 달아주세요.

이 글은 항상 제일 꼭대기에 위치합니다. 최신글은 이 다음 글부터입니다.

* 최종 수정: 2009. 6. 9.
by 로보스 | 2018/12/31 23:59 | |소개| | 트랙백 | 핑백(1) | 덧글(97)
2018 노벨 화학상 이야기 (1)
올해 노벨 화학상은 프랜시스 아널드(Frances Arnold), 조지 스미스(George Smith), 그리고 그레고리 윈터(Gregory Winter) 경에게 돌아갔습니다. 제 연구 분야인 단백질 과학에서 노벨상이 나온 김에 공부도 할 겸 이분들의 업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들을 참고합니다.

단백질은 기본적으로 작은 구슬(아미노산이라 부릅니다)들이 줄줄이 꿰어 있는 하나의 긴 끈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구슬의 종류는 다양하고, 다른 종류의 구슬끼리는 종류에 따라 서로 밀어내거나 당기거나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슬의 순서를 가리켜 '서열'이라고 합니다. 이 구슬끼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단백질은 특정한 구조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구조를 가지고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지요. 예를 들어 어떤 분자를 분해한다거나, 다른 분자에 특정한 원자 뭉치를 붙여준다거나 합니다.

구슬 간의 상호작용으로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그림 출처)

우리는 이 단백질의 기능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에 존재하는 단백질보다 더 빠르게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서열입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접근법은, 모든 서열을 다 조사해서 최적의 기능을 만들어내는 서열을 찾는 것입니다. 문제는, 찾아야 할 서열의 개수가 너무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보통 기능하는 단백질이 100개 정도의 "구슬"을 가지고 있는데요, 각 구슬의 종류는 대개 20개로 봅니다. 그러면 가능한 서열의 수는 100의 20제곱(10020, 1 뒤에 0이 40개!)이라는 어마어마한 수가 됩니다. 실험 하나를 하는데 (말도 안 되게 짧게 잡아) 1초가 걸린다고 해도 1경×1경년이 넘게 걸립니다. (우주의 나이가 140억년이죠?)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전략으로, 서열과 기능의 관계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서열을 요렇게 바꾸면 기능이 저렇게 될 거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다면 최적의 기능을 만들어내는 서열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겠죠. 실제로 이 방법은 합리적 설계(rational design) 기법이라 하여 단백질 설계 동네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방법은 구조의 특정 부분만 사용하여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들에게 좀 더 쉽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전체 단백질을 다 뜯어 고치는 대신 해당 부분만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더 나은 기능을 주는 서열을 찾으면 되니까요.

합리적 설계의 예시. 왼쪽 끝에 있는 "WT"가 원본 단백질이고, 조금씩 단백질을 고쳐나가면서 더 물에 잘 녹는 버전을 만들어 갑니다. y축은 수용도에 대응합니다. (그림 출처)


하지만 서열과 기능의 관계성은 그리 명백하지 않습니다. 머리 터지게 고민해서 서열을 이렇게 고치면 기능이 나아지겠구나 가설을 세우면, 막상 실험에서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똑똑한 과학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착안합니다. 바로 이번 노벨상의 주인공인 유도 진화(directed evolution)입니다. 여기서 '진화'라 함은 다양한 형질이 섞여 있는 집단에 특정 형질이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줘 점차 그 형질이 '선택'되게 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로 농작물 개량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형질을 골라서 교배하고 교배하다 보면 결국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한계 안에서) 그 형질을 강하게 보이는 녀석들이 만들어지죠. (흥미로운 예로서 옥수수의 육종이 있습니다.)

농작물 개량의 기본적인 원리 (그림 출처)

이 개량 과정을 단백질에도 써먹자는 것이지요. 좋은 성능을 주는 서열을 어떻게 짤지 고민하는 대신, 다양한 서열들로 이루어진 단백질들을 만들고 그 중에서 더 나은 성능을 보이는 단백질을 갖는 녀석들이 '선택'되게 실험을 만들면 고민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 아이디어 자체는 이미 1984년에, 1967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만프레트 아이겐(Manfred Eigen)에 의해 제시되었습니다[1]. 이외에도 몇 편의 80년대 논문에서 유도 진화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다루기는 했습니다만, 실험으로 보이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아널드 교수님은 90년대 초에 서브틸리신(subtilisin)이라는 단백질을 가지고 이 아이디어를 실험했습니다[2]. 서브틸리신은 물 속에서 카세인(casein)이라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물 대신 디메틸포름아마이드(DMF)라는 용매에 녹이면 그 성능이 급격히 저하됩니다. 아널드 교수님은 DMF에서도 카세인을 잘 분해하는 서브틸리신 변이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실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다양한 서브틸리신 변이체를 준비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각 변이체의 유전 정보를 준비합니다.)
2) 각 변이체를 박테리아에 집어 넣어 발현시킵니다.
3) 서로 다른 변이체를 가지고 있는 박테리아들을 카세인으로 만든 배양 젤 위에서 키웁니다.
4) 카세인을 잘 분해하는 변이체를 가지고 있는 박테리아는 젤을 분해해 버립니다. 이건 눈으로 보입니다.
5) 젤을 잘 분해한 박테리아들을 모아 그 변이체 유전 정보를 분석합니다.
6) 이 유전 정보를 기반으로 다시 한 번 여러 변이체들을 만듭니다. 2번으로 돌아갑니다.

1번과 6번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변이체의 다양성입니다. 이를 위해 아널드 교수님은 당시 가능했던 모든 기술을 총동원합니다. 먼저, 알려진 변이체들을 여러 개 구해서 시작했고요, 유전 정보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삑사리를 많이 내는 장치(error-prone PCR)를 써서 의도적으로 변이를 많이 도입합니다. 그 결과, 이 사이클을 네 번 돌린 후 얻은 최고 성능의 변이체는 원래 단백질에 비해 256배 좋은 활성을 보였습니다.

자, 그런데 여전히 변이체의 "다양성"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다음 단계로 2013년 작고하신 빌럼 스테머르(Willem Stemmer) 선생님의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그는 역시 큰 생명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많은 생명체들이 유성생식을 합니다. 즉, 부모가 각각 유전자의 절반씩을 제공하여 자식의 유전자를 만들죠. 이는 유전자의 다양성을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스테머르 선생님은 1994년 이 아이디어를 단백질 설계에 적용합니다. 즉, 단백질 변이체를 만들 때, 아널드 교수님이 사용한 방법에 더하여 서로 다른 변이체들이 이 조각 저 조각을 제공하여 새로운 변이체를 조합하는 단계를 도입한 것입니다. (DNA 섞기(DNA shuffling)라고 부릅니다.) 이 방법은 다른 방법들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다양한 변이체를 생성해냈고, 그 이후 유도 진화 연구의 붐을 불러옵니다.

개략적으로 변이체는 이렇게 "재조합"할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이번 노벨화학상의 1/2는 아널드 교수님께 돌아갔습니다. 스테머르 선생님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받지 못하셨죠. 그리고 상의 나머지 1/2을 두 명의 과학자가 나눠서 받습니다. 그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하겠습니다 :)
by 로보스 | 2018/10/04 06:56 | |과학| | 트랙백 | 덧글(1)
행성의 이름 유래
연구해야 하는데 -_- 이상한 데서 또 어그로가 끌리는 바람에...

문제의 발단은 이 글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인문 건축가"라는 사람이 "알쓸신잡"이라는 시리즈 중 하나로 행성 이름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올렸다. 행성에 대해서는 다들 아니까, 흥미로운 글감이 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에 행성 이름이 바뀌었다는 설명부터 사실 관계가 하나도 맞지 않고, 본인의 뇌피셜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당당히 써놓아서 오해를 바로잡고자 이 글을 쓴다.

저 사람도 네이버 검색을 좀 해보았는지 처음에는 맞는 소리를 해놓았다. (낚시글들의 패턴이 이거다. 맞는 소리와 틀린 소리를 섞어놓아서 사람들을 현혹한다.) 다섯 행성의 이름이 고대에는 달랐다는 이야기다. 조금 더 신뢰할 만한 자료인 <조선왕조실록사전>의 다섯 행성(五星) 항목[1]을 보면 "오성은 본래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의 순서대로] 각각 세성(歲星), 형혹성(熒惑星), 진성(鎭星), 태백성(太白星), 진성(辰星)이라 칭하였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에서 오행 사상이 자리잡고 나서는, 이 다섯 행성을 오행과 연결시키게 된다. [1]에 따르면 "지상의 자연 변화를 통찰하면서 구한 이론인 목·화·토·금·수의 오행 사상이 성립된 뒤로는 이를 천상의 다섯 행성으로 투영하여 각기의 이름으로 삼았던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기원전 1세기(!)에 편찬된 사마천의 <사기>를 그 예로 제시한다.

요즘은 좋은 세상이라 유명한 고대 책들을 다 온라인으로 살펴볼 수 있다. 위키문헌에 올라온 <사기> 해당 권의 우리말 번역본[2]을 참고하여 한문 원문[3]을 살펴보자(우리말 번역본은 의역이 많이 되어 있기에 좀 수정했다).
세성은 동방을 상징하고 목(木)이 되며 봄을 주관하고 날짜로는 갑을(甲乙)에 배합한다. (曰東方木,主春,日甲乙。)
형혹은 남방을 상징하고 화(火)가 되며 여름을 주관하고 날짜로는 병정(丙丁)에 배합한다. (曰南方火,主夏,日丙丁。)
전성은 중앙을 상징하고 토(土)가 되며 계하(季夏, 6월)를 주관하고 날짜로는 무기(戊己)에 배합한다. (曰中央土,主季夏,日戊己。)
태백성은 서방을 상징하고 가을을 주관하며 날짜로는 경신(庚辛)에 배합한다. (曰西方,秋,日庚辛。)
진성은 북방을 상징하고 수(水)가 되며 태음의 정령이고 겨울을 주관하며 날짜로는 임계(壬癸)에 배합한다. (曰北方水,太陰之精,主冬,日壬癸。)

사마천은 맨 아래 붙인 자신의 코멘트 안에서 이런 멋진 말로 위의 내용을 정리한다.
하늘에는 오성이 있고, 땅에는 오행이 있다. (天有五星,地有五行。)

정리하자면 이미 기원전 1세기 경부터 오행의 원리에 따라 목성은 목성, 화성은 화성, 토성은 토성, 금성은 금성, 수성은 수성이라고 불리었던 것이다. 다만 고대인들은 각 행성이 태양으로부터 얼마나 먼지 몰랐으니 그 순서가 지금처럼 수금화목토가 아니라 오행의 상생 원리에 따라 목화토금수였던 것이고.

이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연구한 분의 글[4]도 있다. 특히 <고려사>에서 "화성(火星)"이라는 단어가 직접 쓰인 예를 찾아놓았다. 다만 이 글 안에도 글쓴이가 추측으로 쓴 부분이 많은데, 특히 다섯 행성의 고대 이름이 왜 그렇게 붙었는지를 풀어놓은 부분은 한자만 가지고 썰을 푼 것이니까 적당히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by 로보스 | 2018/07/18 02:53 | |과학| | 트랙백 | 덧글(0)
직관이 알고리즘보다 우월한가?
Quantum moves라는 게임이 있다. 나도 해보진 않았지만, 광학 핀셋(optical tweezer)을 사용해서 원자를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옮기는 게임이란다. 개발자들은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해결하기 힘든 과학 문제를 인간의 집단 지성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2년 전 <네이처>에 실린 논문[1]의 초록에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인간 게이머들이 양자 계산 과제와 연관된 어려운 문제들의 답을 찾을 수 있음을 보인다. 게이머들은 순수한 수치 최적화 방법론이 찾지 못한 답들을 찾으며, 게이머들의 답을 분석해 보면 더 깊고 일반적인 본성을 가진 최적화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We show that human players are able to find solutions to difficult problems associated with the task of quantum computing. Players succeed where purely numerical optimization fails, and analyses of their solutions provide insights into the problem of optimization of a more profound and general nature.)

여전히 인간의 "직관"이 컴퓨터 알고리즘보다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들은 이 양자역학 문제가 울퉁불퉁한 에너지 조경(rugged energy landscape)을 가지므로 컴퓨터에게는 어려운 최적화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동일한 이야기를 FoldIt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단백질 접힘 문제가 울퉁불퉁한 에너지 조경을 가진 대표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인간의 직관이 더 나은가? 이걸 불편하게 여긴 한 물리학자(아마도 포닥?)가 이 문제를 연구했고, 그 논문이 오늘 PRA[2]에 출판되었다. 초록에서 역시 한 마디 따온다.

사실, 아무런 선행 지식 없이 임의의 초기값에서 시작하더라도, 단순한 확률적 국소 최적화 방법은 모든 게이머들을 능가하는, 최적해에 매우 가까운 답들을 찾아낸다. (In fact, without any prior knowledge and starting from a random initial seed, a simple stochastic local optimization method finds near-optimal solutions which outperform all players.)

이 사람은 꼼꼼히 이 게임을 뜯어보아, 현재 이 게임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은 "쉬운" 문제들(=컴퓨터도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임을 밝혀내고, 이 경우 실제로 컴퓨터가 게이머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인다. 그리고 양자역학적으로 더 흥미롭고 "어려운" 문제를 제안하면서, 여기서도 게이머들이 더 잘 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가치 있는 연구일 것이라는 말로 논문을 끝낸다.

인간의 직관이 컴퓨터 알고리즘보다 우월한가?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심지어 과학자들 중에서도 :)

...근데 직관이 뭐죠?
by 로보스 | 2018/04/13 07:24 | |과학| | 트랙백 | 덧글(2)
Partition function
지난 번 통계역학 포스팅에 달린 페북 답글 중에 다른 용어의 어원을 물어보는 글이 있어서 쓸데없이 진지충 모드로 2탄을 쓴다.

통계역학에서 또 중요하게 배우는 개념이 "partition function"인데, 우리말로는 "분배 함수"라고 번역한다. 그리고 Q 혹은 Z라는 기호를 사용하는데, 교과서에서는 Z라는 기호가 독일어 Zustandssumme(sum over states)에서 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번역어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만이 없지만, 이 이름이 어떻게 붙은 것인지 궁금해져서 조사를 해보았다.

"Partition function"을 포함한, 내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논문은 C. G. 다윈파울러1922년 "On the Partition of Energy" 논문이다. (이 C. G. 다윈은 찰스 다윈의 손자이자 다윈 항을 최초로 유도해낸 물리학자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논문은 열역학 계에서 에너지가 어떻게 "분배"되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깁스의 책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이후임에도 이들은 ensemble이라는 표현 대신 assembly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그 용어에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들은 모음(ensemble/assembly) 내에 들어 있는 계의 개수와 모음 전체의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가정 하에 "평균적인" 에너지 분포가 어떻게 되는지를 통계적인 방법을 사용해 계산한다. (더 궁금하면 Pathria 2판 3.2절 참조)

이들은 몇 가지 예제를 푼 후 9절에서 자신들의 방법론을 일반화하는데, 두 계 A, B에 대해 각각 다음을 정의한다. (gi(E)는 계 i에서 에너지 E에 대한 축퇴도)
f(T) = ∑E gA(E) exp(-E/kBT)
g(T) = ∑E gB(E) exp(-E/kBT)
그리고 대망의 정의!
These will be called the partition functions of the types of system A and B. (p. 469)

이들은 후속 논문인 On the Partition of Energy: Part II. Statistical Principles and Thermodynamics (1922)에서 우리가 통계역학에서 배우는 분배 함수의 기초적인 용례를 연구한다. 즉, 분배 함수의 편미분을 사용해서 에너지와 엔트로피를 계산하는 것이다. 이 식들을 유도한 다음, 이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Now (5.1) and (5.2) give precisely the thermodynamic expressions in all comparable cases, and this suggests a direct definition in terms of partition functions. (p. 833)

분배 함수만 가지고 에너지와 엔트로피를 정의할 수 있다! ...뭐 이건 다들 알고 있는 거지요?

앞서 소개한 두 편의 논문에서, 다윈과 파울러는 "partition function"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쓰이는 곳에 각각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이들은 독일어를 잘 못했는지 Zustandssumme를 틀리게 썼다.)

[The partition functions] are practically the "Zustandsumme" of Planck, 'Radiation Theory,' p. 127. (첫 번째 논문, p. 469)
[The partition function] with a different notation is the "Zustandsumme" of Planck. (두 번째 논문, p. 825)

그렇다. 바로 우리가 배운 Z라는 기호의 어원이다. 비록 이들은 플랑크의 용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기호와 용어를 가장 먼저 쓴 게 누구인지 또 궁금해지지 않는가?

독일어 문헌을 뒤진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_-;; 근성으로 구글 북스를 뒤져보니 1914년 출판된 강의노트, <Vorträge über die Kinetische Theorie der Materie und der Elektrizität>(물질과 전기의 운동 이론에 관한 강의들)에 수록된 디바이의 글 "Zustandsgleichung und Quantenhypothese mit einem Anhang über Wärmeleitung"(상태 방정식과 양자 가설, 그리고 열 전도에 관한 부록)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3절에서, 광전 효과를 예측하기 위해 디바이는 광자 가설을 소개하고 그 가설을 사용해 "Zustandsintegral"을 "Zustandssumme"으로 바꾼다는 이야기를 한다.

(...) so bekommt man an Stelle des Zustandsintegrals (6) die "Zustandssumme" Z (...). (p. 27)
Verwenden wir jetzt noch die neue Form der Zustandssumme zur Berechnung der freien Energie des asymmetrischen Oszillators. (p. 28)

그러면 Zustandsintegrals (식 6) 대신 "Zustandssumme" Z를 얻을 수 있다. (...) 이제부터는 이 Zustandssumme의 새로운 꼴을 사용하여 비대칭 진동자의 자유 에너지를 계산하자.

식 6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자. 2절에 등장한다.

Zur Berechnung der Funktion F gibt die statistische Mechanik eine sehr einfache Vorschrift. Kennt man nämlich die Energie ɛ eines Systems als Funktion der Koordinaten q und der zugehörigen Impulse p, dann hat man nur das Zustandsintegral
(6) Z = ∫ exp(-ɛ/kT) dq ... dp ...
zu berechnen, (...). (p. 24)

이 함수 F를 계산하는 통계역학은 매우 쉬운 작업이다. 계의 에너지 ɛ를 좌표 q와 이에 대응하는 운동량 p의 함수로 안다면, Zustandsintegral Z를 계산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Z가 벌써 사용된 것을 보면, (큰 차이는 없겠지만) Zustandssumme보다 Zustandsintegral에서 온 기호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구글 북스에서 찾을 수 있는 흔적은 이 정도가 전부이다. 1913년에 두 군데 저널(Physikalische Zeitschrift, Jahresbericht der Deutschen Mathematiker-Vereinigung)에서 동일한 내용이 발견되는데, 이는 1913년 4월에 진행된 해당 강의를 듣고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여하간 Zustandssumme이건 Zustandsintegral이건, 해당 시기에 디바이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 용어를 쓰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용어와 Z라는 기호의 창안자는 디바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하다.

정리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분배 함수"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922년 다윈과 파울러로, 이들은 정말로 계의 에너지를 "분배"하는 개념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기호인 Z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13년 근간의 디바이로, 그는 "상태 적분(Zustandsintegral)" 혹은 "상태 합(Zustandssumme)"의 약자로 Z를 선택했다.
by 로보스 | 2018/03/21 07:43 | |과학|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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